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직봉전쟁 (문단 편집) === 외몽골과 양호순열사 문제 === 4거두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장쭤린과 왕잔위안 등은 돌아가지 않고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었다. 쉬스창은 5월 24일과 5월 25일 양일에 걸쳐 대총통 공관인 회인당에서 회의를 열어 순열사들을 위로하였고 5월 25일 오후의 회의에서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외몽골을 점령해버린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날 회의는 3명의 순열사 외에 진윈펑, 내각 요인들, 베이징의 몽골 왕공들을 포함하여 4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는 외몽골 정벌을 결정, 동삼성 순열사이자 외몽골과 인접한 장쭤린에게 몽골 정벌 문제를 일임하기로 하였다. 먼저 쉬스창이 몽골 정벌이 결정되었음을 발표하자 장쭤린이 외쳤다. >"외몽골 역시 중국의 영토입니다. 오늘날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이민족]]이 점령을 했는데 중국 인민의 치욕입니다. 국토를 보전하는 것은 군인의 책임입니다. 정몽 문제는 이미 다시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장쭤린은 토벌을 하기로 이미 국가 원수의 명을 받았습니다. 조만간 관동의 건아들을 이끌 것입니다. 외몽골 수복을 위하여 사막의 북쪽 초원을 누빌 것입니다. 만일 이민족의 수중에 있는 몽골을 탈환한다면 쭤린은 만리변방에서 죽어도 이 구차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5월 28일 차오쿤이, 5월 30일에 왕잔위안이 임지로 돌아갔다. 5월 30일, 장쭤린은 몽강 경략사에 임명되어 수원, 열하, 차하얼 각 특구의 도통을 지휘할 권한을 받게 되었고 5월 31일 봉천으로 귀환하여 6월 5일 몽강 경략사에 취임, 7월 5일 몽강 경략사 직인을 수령하고 7월 6일 휘하의 관제를 제정하고 각급 관원을 임명, 열하, 수원, 차하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직계 역시 23사단장 왕승빈이 하남독군에, 28사단장 염상문이 섬서독군에 임명되면서 어느 정도 정치적 이익을 챙겼다. 당시 차하얼 도통은 장징후이로 직계의 요인이었고 수원 도통은 마복상인데 도림현에 봉군이 주둔한 상태라서 봉계에 복종하고 있었다. 열하도통은 북양군벌의 원로 강계제였는데 눈치를 살피며 대단한 행동을 취하진 않고 있었다. 4거두 회의와 이어 장쭤린의 몽강 경략사 임명으로 직봉 양파의 이익 분배가 적절히 이루어지는가 했지만 곧 변수가 발생했다. 1921년 6월 3일, 왕잔위안이 무창으로 돌아왔는데 바로 다음날인 6월 4일 의창에서 병변이 발생했다. 이어 6월 7일 무창에서도 병변이 발생했는데 병변에 참여한 병사들이 대부분 직계군이었다. 이는 이웃한 호남성의 자치 선포에 자극을 받은 호북의 연성자치론자들이 호북성에서 자치를 벌이기 위해 봉기한 것이었고 호남성장 [[자오헝티]]가 7월 20일에 군대를 보내 호북의 자치운동을 원조하였다. 결국 왕잔위안은 [[우페이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페이푸는 25사단장 소요남을 파견하였는데 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왕잔위안은 패하여 하야를 통전하였고 소요남은 진격을 정지했다. 쉬스창은 8월 9일 우페이푸는 신임 양호순열사에, 소요남을 호북독군에 임명하면서 호북성을 우페이푸에게 주었고 우페이푸는 자오헝티의 항복을 받아내어 호남성 악주에 병력을 진주, 호남까지 세력권을 확장했다. 이는 장쭤린의 불만을 크게 자극했다. 이 당시 장쭤린은 우페이푸를 일개 사단장으로 얕잡아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순열사의 지위에 올라 자신에게 대등해졌고 자신이 탐내는 장강 유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었다. 분노한 장쭤린은 절강독군 [[루융샹]]과 연락하는 한편 몽강 경략사에서 하야하겠다고 발표하여 불만을 표시했고 이에 쉬스창은 장쭤린을 달래기 위해 강계제를 육군검열사로 이동시킨 후 10월 1일 봉군 28사단장 급금순을 열하도통에 임명하여 장쭤린을 달랬고 우페이푸의 양호순열사 임명으로 촉발된 정치적 위기는 잠시 사그라들었다. 이어 쑨원의 북벌에 대응하기 위해 11월에 개최된 바오딩 회의에서 직계는 사천과 호남을, 봉계는 복건과 강서를 포위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직봉의 불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